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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483 진안, 마령의 폐현지(廢縣址) 관리자 07/13 11:46:51 735

현은 고을의 행정 사법을 통할하며 육방 관속을 통제하던 관청으로 내외 동헌이 있어 내동헌은 내아(內衙)라 칭하여 수령의 가족이 거주하고, 외동헌은 수령의 집무처로 현 진안군청과 같은 것으로 진안 군청과 용담면사무소 자리는 진안현 용담현의 자리다.

육방은 이방(인사와 행정), 호방(호구와 재정), 예방(예악과 문고), 병방(병사), 형방(법률과 소송), 공방(공업과 상업)들이었다. 향청은 좌수 벌감의 집무처로 향사당(鄕射堂)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서는 향회 대례와 소례로 나누어 향토적인 큰 행사를 매년 거행하여 미풍양속을 조장 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책방은 책방 방자의 집무처로 현재의 진안 경찰서의 자리였다. 작청은 길청이며 이방, 예방, 집사들의 집무처였다. 호장청은 현사(縣司)라고도 하며 호방 진휼색의 집무처로 옛날 진안현의 진휼미는 천 사백 구십 사석, 일두, 이승이었다. 

형방청은 지금의 진안읍 사무소의 자리에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형방, 옥형방 옥사정의 집무처로 벼슬아치의 자제들이 공부한 다음 시험을 행하여 취직 하였다. 공방청은 공방 공고자의 집무처였고 대동청은 대동색의 집무처로 지금의 세무서의 일을 하였다.

도봉소는 도봉색의 집무처였다.장교청은 훈련 청으로 장청, 또는 순교청이라고도 하며 장교의 집무청이며 지금의 등기소의 자리에 있었다. 이때 우리 고장의 병안은 기병 380명 보병 232명, 동노364명, 아병 110명 경포보 89명 금위군 69명 어영군 37명 원주 52명이었고, 우리 고장의 군기는 흑강궁 27장,교자궁 75장, 편전183부, 장전 187부, 통아 191개 등이었다.

관노청은 관노의 집무처인데 지금의 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며 우리 고장에는 관노 40명, 비 33명, 교노 9명, 비 10명, 각사노 25명 비8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진안지에 있다.이밖에 사령청 관청 객사가 있었는데 객사의 자리는 지금 진안 국민학교 자리에 있었다 한다. 

객사는 삼헌으로 중앙은「전하 만만세」의 군왕 위패를 모시고 신임수령은 참배하고 삭망과 나라의 애경사 시에는 수령이 이민(吏民)을 대동 망배(望拜)하였다 한다. 중앙의 동쪽을 동대청(동재) 서쪽은 서대청(서재)이라 하여 구빈 접대 처소였다 한다.

마령 평지리의 폐헌지는 원평지 마을에 있는데 현청의 자리는 초가로된 민가가 있으되 그 뜰과 집 앞에는 잘 깎아 다듬은 돌들이 흩어져 있다. 마령은 고려조 마령현으로 불리어진 고현지이다.백제시대에는 마돌현(馬突縣) 마진(馬珍) 마등량(馬等良)이라 하였으니 백제 시대와 고려 시대의 현청이 있었던 자리라고 추정 된다.

성수면은 후백제 난진아(難珍阿)였으며 신라 통일로 진안읍의 일서, 이서면이 되고 917년 고려 창건후 전주현으로 , 공양왕 3년에 마령현에 속하여 있다가 조선 태종13년까지 월랑현(月浪縣)으로 현감을 두었다고 한다. 현청의 터는 성수면도통리에 있으며 동헌평(東軒坪)이라고 부르며 부근에 돌담 우물터등이 남아있고 옥평(獄坪), 향교평(鄕校坪)이라고 하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사기조각등이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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