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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18 절의(節義) 지킨 충신 전 극례(全克禮) 관리자 07/13 11:07:00 604

호는 낭헌(浪軒)이요,본관은 천안(天安)으로 형조판서 증좌찬성 문평공 도은(刑曹判書 贈左贊成 文平公 都隱)의 증손이요 판 중추부사 사미의 아들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용모가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했을 뿐아니라 도량이 넓고 문장이 장하여 당시에 이름난 재상 황희(黃喜 1363~1452)나 허조(許稠 1369~1439)등도 사우로 알고 서로 도의로 사귀었다 한다.

세종조에 정시에 올라 승문원정자, 사헌부정언 등의 벼슬에서 부터 호조, 공조, 형조참판에서 대호군의요직을 거쳐 호조판서겸경연춘추관사 오위도총 부도총관 (戶曹判書兼經然春秋館事 五衛都摠 府都摠官)에 까지 이르렀다.

1455년 어린임금 단종이 수양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창덕궁으로 옮기니,선생은 벼슬을 버리고백악산 조용한곳에 가서 시사를 한탄하며 숨어 있다가 곧 이어 가족을 이끌고 선대에 유서가 깊은 진안마령의 강정리로 내려와 증조 할아버지이신 문평공 도은선생의 유훈을 받들며 은거하게 되었따.

중앙정계의 거물로 낙향한 선생은 스스로 낭헌이라 자호하고 산높고 물맑은 월랑의 자연에 묻혀 하늘을뚫고 우뚝 솟은 마이의 석봉에 자신의 마음 견주면서 생육신의 중심인물인 추강 남효온, 어계 조 여 등절의파 사림들과 교유하며 일생을 마쳤다. 따라서 당시 지조있는 사림들은 선생의 맑은 절개와 높은 의리를 중히 여기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면서 두문 에서 나오지 않던 고려유신 칠십이현의 충절에 비하기도 하였고,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길 수 없다하여 수양산 중에 즐어가 순절한 백이 숙제의 충의에 견주기도 하였다.

현재 유양 조중목이 지은 신도비와 함께 성수면 거사곡에 선생의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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